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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강진여행] 다산초당 :: 정약용 선생님의 유배지

Trable (여행 기록장)/국내여행

by 바람국화 2015. 9. 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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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삼일째, 부모님이 계시는 순천을 떠나서 오늘은 땅끝 해남까지 달려갈 계획이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건 이번이 두번째, 사실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서른이 넘어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을 하고 결국 시간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구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하여, 올해부터 혼자 여행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혼자서 밥먹는걸 무척 싫어하는 성격탓에, 이렇게 혼자 여행을 떠나는날은 식사를 제대로 못챙기고 거의 굶고 다닌다.

유명한 유적지를 열심히 보기는 했지만, 역시나 심심하고 외로웠다.

나는 역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살아나는 체질인가 보다 ㅎㅎ 아직 혼자 여행을 다니기엔 한참 내공이 부족하다.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어 18년간 머문 곳으로, 그중 11년을 이곳 다산초당에서 머물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다산초당' 의 '초' 는 풀초(草)를 의미하는 한자를 사용한다. 원래는 초가집의 지붕을 얹은 소박한 건물이었으나 복원하는과정에서 어찌된 영문인지 기와집으로 복원이 되어 '초당'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조만간 짚을 얹은 본래의 '초당'으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뒤늦게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초당에 이르는 길은 수백년 된 소나무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인 정호승은 이 길을 '뿌리의 길' 이라 노래하였다.
길이 생각보다 높고 가파르기때문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나보다 앞서 다산초당으로 향하던 아주머니는 결국 중간에서 되돌아가서 신발을 등산화로 갈아신고 오셨다.
수백년동안 사람들이 밟고다녀 마치 계단처럼 반들반들하게 변한 뿌리의 길은 수백년전 역사와 나를 이어주는 역사처럼 느껴졌다.

 

 

 

 


 

 

 

○ 서암과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유배객의 쓸쓸한 거처가 아니라 선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이자 조선시대 학술사에서 가장 활기찬 학문의 현장이었다.

다산초당에서 머무는 10년동안 정약용은 18명의 제자를 길러냈고, '목민심서' '경세유포' 등 5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집필하며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 하였다.


 

 


 

 

 

천일각은 다산선생이 살아계실적에 원래 있던 정자는 아니다.

다산선생이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때 마음을 달래던 장소에 , 나중에 다산초당을 복원하면서 정자를 세워 사람들이 쉬어갈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졌다.

여름방학때라서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여행온 가족들이 두팀이나 있었다. 초등학생 꼬마어린이가 열심히 다산초당에대해서 조사하고 궁금한점을 부모님께 물어보는 모습이 부러웠다.

 

 

 



 

 

10년만에 방문한 다산초당은 내 기억 그대로였다.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는길, 점심시간이 지나 식사를 해야할 시간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소심한 성격탓에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를 망설인 끝에 그냥 해남으로 차를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사먹은 음료수 한캔이 내 점심식사의 전부였다 ㅎㅎ

 

 

 

# 2015, AUG

# Kangjin , Korea

# Panasonic DMC-GM1 + 20mm F1.7 + 7-14mm 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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