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통은 본래는 원숭이 동굴로 불렸던 버려진 폐광 촌이었다. 지금은 고양이들의 천국으로 유명해져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는 허우통을 대만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잡았다. 5일간의 여행피로는 누적될 대로 누적되어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웠다. 습도 높은 대만의 여름 날씨도 나의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를 대만,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 가겠다는 욕심에 오늘도 강행군이었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하지만 역시 포기할 수가 없다.
숙소를 지우펀에 잡아 두었기 때문에 허우통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루이팡 역에 내려 핑시선을 갈아타고 1정거장이면 금방 허우통에 도착한다. 거리는 가깝지만 대중교통이 편하지는 않다. 한시간에 1대정도 있는 핑시선 시간을 잘못 계산하여 혹여라도 기차를 놓치게 된다면 다음 기차 시간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나와 일행은 이곳에서 2시간 정도를 보내고 돌아왔다.
핑시선에서 내리자 마자 귀여운 고양이 조형물들이 우리를 반겼다. 안내 표지판들의 글씨체들도 동글동글 귀여운 한문체다. 한문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만은 일본 식민지배를 오래 받아서 곳곳에 일본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데, 이런 표지판이나 일러스트를 보면 확실히 약간 일본스럽다는 느낌.
고양이 마을 답게 고양이들은 여기저기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살짝 머리를 쓰다듬어봤는데 귀찮은 기색없이 가만히 있는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은 고단한 생활 탓에 사람만 보면 피하기 바쁜데 이곳 고양이들은 참 행복해 보였다.
게으르게 누워있는 고양이 들과 달리 나와 일행은 금세 체력이 바닥났다. 더운 날씨에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존 본능으로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217 cafe' 숫자는 건물의 번지수를 뜻한다고 한다. 고양이를 주제로한 귀여운 일러스트 엽서들과 기념품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가격이 싼 편이 아니 라서 군침만 삼키다가 결국 눈으로만 담아두고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손수건이라도 하나 사올 것을..
필요 없는 것을 함부로 사지 않는다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 있지만, 여행에서의 이런 작은 사치는 한번 눈 질끈 감고 질러도 괜찮은데, 항상 이렇게 한참 머리속으로 계산기만 두드리다가 꼭 후회를 한다.
아이스커피 한모금으로 다시 체력을 회복하고나서 우리는 문득 길 건너 폐광마을이 궁금해졌다. 언뜻 보기에도 낡아 보이는 다리는 의외로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길 건너에는 폐광을 개조해서 광산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은 미니열차가 있었다. 한번 타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핑시선 시간을 놓칠 것 같아 포기하였다. 벽화는 원숭이 동굴로 불렸던 예전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반대편 아기자기한 고양이 마을과는 다르게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건너마을은 버려진 폐광촌의 스산한 느낌이 물씬 났다. 잠시 둘러보았는데 별다른 구경거리는 없어서 발길을 되돌렸다.
그러다 여기서 사고가 생겼는데, 애지중지 들고 다니던 미러리스 카메라를 손에서 놓쳐서 떨어뜨린 것..!카메라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바닥을 두어 바퀴 굴러갔다. 아차 하며 얼른 주워 봤지만 이미 수습할 수 없는 큰 상처가 생겼다. 덤벙대는 내 성격은 결국 이렇게 일을 만든다. 다행히 여행 마지막 날이라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하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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