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장마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대학후배 K로부터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선배, 내일 새벽에 B선배랑 낙산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전화를 받은 건 금요일 오후, 떠나기로 한 날짜는 토요일 밤 12시. 정말 급작스러운 초대였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여러가지 문제로 마음이 심란했던 나는 반가운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밤 12시에 양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새벽 3시즈음 낙산사에 도착했다. 새로 뚫린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오니 양양까지 금방이었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태백산맥을 가로질러 왔더니 이곳은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있었다. 서울은 샤워기로 튼 것같은 비가 쏟아지는데 산맥 하나 넘어왔다고 하늘이 맑다.
자연이란 참 신비롭다.
운전은 B선배가 했지만 정작 옆에서 수다만 떨고있던 K와 내가 먼저 피곤에 절어서 잠깐 눈을 붙이는 사이 B선배는 혼자 기도를 드리겠다며 먼저 절로 올라갔다.
B선배는 요즘 고민이 많다고 한다. 절박한 마음으로 제발 자기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새벽에 혼자 낙산사로 달려온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우리 셋은 모두 대학교 불교 동아리에서 만났지만, 사이비 신도였던 나와는 달리 B선배는 포교사 자격증까지 갖출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나는 B선배가 소원을 빌러 절에 다닌다는 말을 할 때 내심 놀라기도 했다.
사실 불교는 소원을 들어주는 종교는 아니다. 간절히 기도 하면 하느님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기독교 사상과는 달리, 불교의 기본 교리는 세상은 원래 고통스러운 곳이니, 그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번뇌와 고통을 끊어내서 다시 환생하지 않고 성불하자는 것이 기본 사상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B선배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토록 절박해본 적이 없는 내가 B선배를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 진다면.. 그래 그것도 괜찮다. 어차피 삶이란 정답은 없으니.
한시간 반 정도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5시 예불이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일어나서 낙산사로 올라갔는데 조그만 암좌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낭패였다. 어느 절의 신도들이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예불을 드리러 왔다고 한다. 엉덩이 하나 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야단법석' 이었다. 아쉽지만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냥 서울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을 찾아내어 시원한 물 회 한그릇을 주문했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저 멀리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장마철이라 해돋이는 기대도 안 했는데 의외의 수확!
역시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게 인생인 모양이다. 새벽기도는 드리지 못했지만 해돋이를 보며 그래도 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 야단법석 (野壇法席)
‘야단(野壇)’은 ‘야외에 세운 단’을 말하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를 말한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00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다.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출처 :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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