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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아름다운 한옥성당 :: 나바위 성당

Trable (여행 기록장)/국내여행

by 바람국화 2018. 9. 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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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야 100년쯤 된 건물은 새 건물로 취급 받을 만큼 오래된 건축물들이 흔하지만, 6.25 전쟁을 치룬 우리 나라에는 백 년 된 건물이 참으로 귀하다.

그래서 나는 어딘가 먼 곳으로 갈 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검색해서 주변 사적들을 둘러보고 오고는 한다. 외국의 오래된 유적들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젊은(?) 사적들도 나는 사랑한다. 이번에 지인의 결혼식으로 익산에 갈 일이 생긴 김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서 익산 나바위 성당을 들렸다.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금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평야 한가운데 사발을 엎어 놓은 듯 작은 산이 있고,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펼쳐진다. 이름하여 ‘나바위’. 오늘날 화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화산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나바위 성당은 이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들에게 이 성당은 꼭 한번은 들려야 하는 성지 중에 하나이다. 1845년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한국에 도착하여 첫 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바위 성당은 1897년 본당 설립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요셉 신부가 1906년에 시작하여 1907년에 완성하였다. 설계는 명동 성당 설계자인 프와넬(Poisnel) 신부가 했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으며 건축양식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한옥 형태를 취했다. 그 뒤 1916-1917년에 흙벽은 양식 벽돌로, 용마루 부분의 종탑은 헐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으로 벽돌을 쌓아 종탑을 세웠으며, 외부 마루는 회랑으로 바꿨다. 그리고 1922년 회랑 기둥 아랫부분을 석조로 개조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들과 참배객들이 별로 많지 않은 때였다. 덕분에 조용하게 성당을 관람할 수 있었다. 만물을 감싸 주는 듯한 따듯한 성모 마리아님의 미소같은 아침 햇살은 덤이었다.

1845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1년여의 짧은 선교생활 끝에 관헌에 붙잡혀 순교하였다. 비록 사목 활동은 짧았으나 그의 굳건한 신앙은 한국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그 후 백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나바위 성당은 일제시대부터 6.25 전쟁을 지나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함께하였다.

그 길고 지순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이 성당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의 건강과 소박한 평화를 기도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음이라. 조용한 회랑을 걸으면서 나도 같은 마음으로 기원했다.

 

 

 

 

특이하게 스테인드 글라스가 한지로 되어있다. 한옥 지붕과 참 잘 어울렸다.

 

 

 

성당 내부에는 우리나라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 자리를 구분한 칸막이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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