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여행 3일 내내 날씨는 매우 맑았다. 블라디보스톡 이틀째 아침, 숙소에서 나와서 해양공원을 산책 하기로 했다. 이른시간이라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제 가게문을 열고 있었다. 가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햇살에 막 씻고나온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를 폐에 천천히 눌러 담았다. 파란하늘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오늘은 9월의 마지막 일요일.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매년 9월 마지막 일요일에 호랑이 축제를 크게 개최한다. 축제날 아침이라서 그런지 공기에 설레임이 담겨져 있었다. 여행자인 나의 마음도 덩달아 설레기 시작했다.
삼면이바다로 둘러싸인 러시는 해양자원이 풍부하다. 흔한게 바다인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러시아의 위치가 북반구에서도 위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는 바다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얼어붙은 바다때문에 고립될 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부동항, 즉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에 집착한다. 바다를 테마로 한 해양공원은 러시아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를 잘 보여주는 테마파크이다.
처음 러시아가 눈독을 들인 항구는 유럽쪽이었다. 그러나 부동항을 얻기 위해 일으킨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별수 없이 아시아쪽으로 눈을 돌린다. 당시 제 2 아편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 청나라를 설득하여 베이징조약을 맺었다. 그로인해 1860년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영토가 된다.
사실 부동항으로 알려진 블라디보스토크지만, 1월 날씨는 평균 -12도에 이르기때문에 한겨울에는 바다가 얼어 붙는다. 다만 러시아의 다른 지역보다 얼음 두께가 얇기 때문에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서 항구로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겨울에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면, 얼어붙은 바다를 구경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상상이 안되는 부분이다.
가끔 어떤 물건이나 단어가 매개체가 되어 잊고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예를들면 이런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때 불교 학생회에서 동아리 생활을 했었다. 그당시 1년에 한번 동아리 회지를 냈는데 제목은 '목우' 였다. 지난 추석연휴 오랜만에 고향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나는 책장 한구석에서 낡아서 누렇게 색이 바랜 지난 회지를 발견했다. 엄마는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계신다.
20년이 넘은 그 빛바랜 책 한권이 내 마음을 잊고있었던 고등학교 시절로 이끌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그 기억들. 법당의 향냄새, 약간 차가웠던 마룻바닥 무겁지만 푹신한 법당의방석. 그때 그 기억들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해서 깜짝 놀랐다. 애써 잊고있었던건 아니었지만 억지로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던 생각의 파편들이었기 때문에, 20년전 기억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번여행의 매개체는 바다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는 동안 묵었던 숙소는 해양공원 바로 앞에 있어서, 운이좋게도 나는 3일 내내 아침마다 바다를 산책할 수 있었다. 마지막날 나는 해변가에 혼자 앉아서 지금 이 시간을 내 기억속에 저장시켰다. 부산과도 닮았고 2년전방문했던 네덜란드 덴하그 Den Haag 와도 조금 닮은 바다는 한국을 비롯한 내가 머물렀던 모든나라와 이어져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었더랬다.
한국에 돌아가서 시간이 또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이곳과 비슷한 바다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지금 저장해두었던 이 순간을 다시 꺼내어 그리워할 것이다.
이른시간이라 놀이공원은 아직 사람이 없이 한산했다. 소박한 놀이기구들과 오리보트가 귀엽다.
어느 여행 후기에서 해양공원에 오면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라는 말이 생각나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었다. 이태리 젤라토와 비슷한 아이스크림은 우유맛보다 상큼한 과일맛이 강했다. 상큼하고 맛있었다. 과자로 만든 콘에 3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는데 망고,피스타치오, 티라미수를 골랐다. 가격은 한화로 약 5천원 정도.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해양공원 끝에 킹크랩과 새우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해양공원에서 킹크랩을 먹었다는 사람들은 다들 여기서 먹는 후기들이다. 두사람이라 킹크랩을 먹기에는 양이 많고 부담스러워서 고민하고있었는데, 다행히 둘이서 여행온 한국인 여자 두분이 자기들이 시킨 음식이 너무 많다고 합석을 권하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얻어먹었다. 언니동생 사이라고 했다. 여동생이 없는 나는 두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참 부러웠다. 이 두사람은 나중에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공연을 관람할때 한번 더 만나서 도움을 받았다.
암스테르담에서도 안먹은 암스텔 맥주를 여기서 먹게 되는구나 -_-ㅋ
가게앞에서 새우나 킹크랩을 고르고 kg 단위로 먼저 계산을 하면 된다. 가게 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20분뒤에 조리된새우와 킹크랩을 가져다 주신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크기의 킹크랩 집게에 살이 가득 차 있었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역시 한국보다는 훨씬 싸다. 새우는 두종류가 있었는데, 어쩐지 못생긴 녀석이 더 맛있을것 같아서 뿔이난 험한 인상의 새우로 골라봤다. 알을 가득 품고 있는 모양이 제철인 모양이다. 어쩐지 살이 가득 차있고 맛있더라. 딱딱한 뿔에 찔려서 까먹는데 좀 고생하기는 했지만, 그정도 고생을 할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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