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나서 마음이 여유로워 졌다.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운 좋게도 강화도 관광 안내 팜플렛을 얻어서 식당앞 흔들그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오늘 들러야 할 곳을 점검했다.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어서 강화도 군청 홈페이지의 추천 여행지와 지도를 맞춰보니 개략적인 여행계획이 세워졌다.
강화도 여행 첫날은 강화도 남쪽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다음날은 강화도 북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이다. 하루만에 둘러볼만큼 생각보다 만만한 곳이 아닌곳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떠난 여행이기에 조바심을 내려놓고 움직이기로 하였다.
첫번째 목적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는 전등사 로 향하였다.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기록에 남아있는 사찰중에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고, 전등사의 창건기록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이다.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에 이어 3번째로 세워진 도량으로. 성문사와 이불란사는 지금은 그 소재를 알수가 없기때문에 기록에 남아있는 사찰중에서는 전등사가 가장 오래된 사찰이 되는 셈이다.
창건당시 '진종사 (眞宗寺)' 이름이었으나, 1282년(충렬왕 8년)에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도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어, 1621년 2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 되었다.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계단에 숨이 '헉'하고 막힐때쯤 강화도 동쪽 입구인 동문에 도착하였다.
전등사에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이나 불이문이 없고, 삼랑성(三郞成) 동문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강화 삼랑성]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
았다고 해서 삼랑성(三郞城)이라고 부른다.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연관된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는 귀한 역사 유적이다.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성의 둘레는 대략 2,300m이다. 축성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친 할석(割石)을 사용한 삼국시대의 축성 기법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한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오던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출처 : 강화군청 홈페이지 http://www.ganghwa.incheon.kr/
※ 양헌수승전비
※ 전등사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수 있게 만든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실제 윤장대는 예천의 용문사에 보관되어있다. 전등사의 윤장대는 예천의 것을 재현한 것이다.
아쉽게도 고장이 났는지 '돌리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어 아쉽게도 눈으로만 구경했다.
한번 돌릴때마다 경전을 읽은것과 같은 공덕이라니, 어려운 경전 공부 대신 편하게 돌리기만 하면 된다니 사기도 이런 어마어마한 사기가 없다. 옛날사람들의 게으름을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 한편으로 곰곰히 생각해보니, 혹시 글을 못읽는 민초들을 위해 이런 윤장대를 만든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여 글을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 민초들이라고 해서 어찌 지극한 마음이 없었겠나..
무지한 백성들까지 골고루 부처님의 가피로 보살핌을 받게 하기위해 윤장대를 만든것은 아니었을까?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윤장대를 기웃거렸다.
※ 개인적인 생각일뿐 역사적인 사실은 아닙니다.
절안에 다소곳한 모양새로 찻집이 하나 있다. 죽림다원은 원래 전등사 승병의 초소가 있던 자리였다.
이곳 승병들은 죽림다원에 본진을 두고 전등사와 삼랑성 일대를 지켰다.
※ 전등사 무설전 (無說殿)
1259년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로 도읍을 옮겼을때 당시 전등사 경내에 고려의 가궐을 세우고 한때 임금이 머물렀던 때가 있었다.
전등사 안 공터로 남아있던 이 가궐터에 2012년 '무설전'이 신축되었다. 얼핏보면 미술관 같기도 한 이 건축물은 전통 불교의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한 현대식 공간으로, 오래된 사찰의 건축물들과 위화감 없이 어우러져있었다.
함께한 지인은 전등사를 둘러보고는 상업적인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탄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근본적으로 불교 정신은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종교이다. 어찌보면 타인보다 자기자신을 더 사랑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일수 있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불교 문화는 재미없는 곳, 고리타분한 곳 으로 인식되어 젊은이들의 외면을 받고있다.
전등사 무설전은 현대 미술품처럼 세련되고 멋있다. 나는 불교의 이런 변화를 반긴다.
※ 전등사 대웅전 (보물 제178호)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면 3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길이로 나누어 빗살문을 단 형식이다. 좌우 옆면은 벽이나 앞 1칸에만 외짝으로 문이 있다.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퉁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 끝이 들리도록 했다.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 출처 : 전등사 홈페이지 http://www.jeondeungsa.org/
대웅전 추녀밑에 괴상한 원숭이 모양의 조각물이 하나 있다. 유명한 전등사 나녀상(나부상) 으로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
전등사 대웅전 공사에 참여한 목수가 절 아래 마을 주막집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일이 끝나면 여인과 살림을 차릴 생각으로 돈을 모두 맡겼는데, 마음이 변한 여인은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도망쳐 버렸다. 목수는 망므이 아팠지만 공사를 마무리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못내 용서하지 못한 원망의 마음으로 대웅전 추녀 밑에 도망간 여인을 조각해 무거운 지붕을 평생 떠받들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경내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있는데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되어 쏟아질 기세다. 전등사를 전부 둘러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지만 어쩔수 없이 도착한지 한시간도 안되어 다시 주차장으로 철수 해야만 했다. 전등사를 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커서 나중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해서 머물러 보고 싶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카페를 들르기로 하였다.
※ 전등사 주차비 : 2,000 원 / 입장료 3,000 원
# 2015.JULY , Ganghwa, Incheon
# Panasonic lumix G7 + 7-14mm F4.0 + 35-100mm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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